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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성유전학은 무엇인가?

본 웹사이트에서 관심을 갖는 분야 중 하나가 후성유전학(또는 후생유전학, epigenetics)분야 입니다. 유전학은 중고등학교 때에도 배우니 익숙할텐데, 후성유전학은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정식으로 다루질 않으니 생명과학관련 전공이 아니면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겠죠.
간단히 설명하자면, 어떤 형질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이 유전입니다. 모든 생물을 구성하는 세포는 세포분열을 통해 두개의 딸세포를 만듭니다. 세포분열은 단세포생물은 물론 다세포생물의 경우에도 다음 세대를 만들기 위한 필수과정입니다. 일반적으로 세포가 분열하면서 유전자가 복제되어 두 딸세포로 전달되는 현상이 바로 유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똑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도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따라 다른 형질을 나타내게 됩니다. 후성유전은 세포분열시 유전자의 발현 양상이 두 딸세포로 전달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유전자가 발현되기 위해서는 유전자인 DNA분자가 단백질 효소들과 결합해야 하는데, 이때 DNA분자가 응축되어 있거나 다른 단백질에 강하게 붙어 있으면 발현 효소들과 결합할 수 없고 유전자 발현도 일어나질 못합니다. 특정 유전자 부위에 DNA의 메틸화와 히스톤 단백질들의 화학적 변형에 의해 응축된 정도가 결정되고 유전자의 발현 여부가 결정됩니다. 세포분열시 DNA에 메틸기와 히스톤단백질의 화학적 변형이 그대로 전달되기 떄문에 그 응축되는 양상이 딸세포에게도 전달이 되고 이것이 후성유전의 원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외에도 세포분열시 세포질에 남아있는 전사인자들과 비암호화 RNA에 의해서도 유전자 발현이 조절되고 이들도 후성유전에 역할을 하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아래의 글에서는 이런 후성유전학적 변형이 왜 관심을 받고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물론 아래 제시된 이유 외에도 수 많은 이유가 있겠죠. 어쨋든 후성유전학은 이렇게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기술, 그리고 다양한 분야가 공조하여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는 hot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림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IAu44BkO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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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후성유전학(또는 후생유전학, epigenetics)일까?

사람을 비롯한 생물들이 36억년이란 그 오랜 세월을 견뎌낸 생존 방식은 산이나 바다처럼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며 온갖 환경변화와 긴 세월을 견뎌낸 수동적인 방식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과 유사한 자손을 낳고 환경에 적응한 형질을 새로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방식을 통해 생명의 영속성을 이어왔다. 자신과 유사한 자손을 낳는 것을 유전이라고 부른다. 이 유전 과정을 인간이 정확하게 이해하게 된 시기는 불과 70년전 DNA분자가 자신과 똑 같이 생긴 물질을 만들어 두 딸 세포가 똑 같이 나누어 갖는 다는 것을 알게 된 때일 것이다.

DNA분자의 생김새는 기본적으로 긴 끈과 같은 구조로 모두 비슷하다. 하지만 그 기본구조를 구성하는 4가지 염기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배열된 순서에 따라 다양한 정보를 담을 수 있다. 이 ATGC의 네 가지 염기의 배열된 순서에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 정보는 물론 어느 시기에 어떤 유전자가 발현되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들어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화석을 통해 처음에는 단순한 형태의 생물들 만이 존재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생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똑같은 염기서열을 가진 DNA분자를 전달해주는 유전현상만으로는 이렇게 다양한 생물들이 어떻게 나왔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즉, 지구상에는 어떻게, 왜 이렇게 다양한 생물들이 만들어졌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이를 설명하는 것이 진화론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진화의 원리는 우연한 돌연변이로 인해 다양한 생물들이 만들어지고 이들 중 환경에 잘 적응한 생물이 살아 남게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진화과정은 다양한 환경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한 생물 종의 발생과 생존을 선호하기 때문에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그 생물의 번식과 생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자연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생물은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기 마련이고 이렇게 생긴 돌연변이가 생물의 다양한 형질로 나타나면 그 중 환경에 맞는 생물들이 살아남는 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구의 다양한 환경만큼이나 다양한 생물들이 가득차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의 진화론이나 유전학을 통해 다양한 돌연변이 발생 기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랜덤하게 일어난 돌연변이들인지 아니면 환경에 맞춰 일어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즉, 환경에 맞는 특수한 돌연변이가 우연히 생긴 것인지 아니면 꼭 맞는 돌연변이가 의도적으로 생기게 하는 어떤 방법이 있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특정한 환경에 맞는 돌연변이가 만들어지려면 어떻게든 환경을 감지하고 이에 적응하는 생리적 변화가 유전자에 반영이 되어야 한다. 워낙 유전의 원리가 간결하고 분명했기 때문에 유전자에 일어나는 돌연변이는 랜덤하게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확률에 의해 일어나는 돌연변이 외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유전자의 염기서열에 의한 형질발현이 환경에 의해 조절되고 그 과정에서 DNA분자에 화학적 변형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환경이  DNA분자에 영향을 주는 방법이 밝혀진 것이다. 즉, 환경에 맞추어 특수한 유전자들이 발현되는 양상이 후생유전학적으로 DNA나 DNA와 결합한 히스톤, 또는 noncoding RNA(단백질 정보를 갖지 않는 RNA)에 남게되고 이것이 딸세포들에게도 전달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더 나가서는 유전자 발현 양상이 직계 세포가 아니더라도 평형적인 전달(parallel transfer)에 의해 인접한 세포로 전달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체세포의 발현양상이 생식세포에도 영향을 미쳐 다음 세대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물론 이런 실험은 아직 무척추생물들에게서만 입증된 것이고 사람이 속해있는 척추동물에서는 밝혀진 기작이 없다.  또한 이런 변화는 유전자의 염기서열과의 관계가 없는 일이기에 이것이 진화로 연결되는지는 더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생유전학은 인류가 고민하고 풀어야할 중요한 숙제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즉, “유전이냐 환경이냐? (Nature or Nurture?)” 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일 수 있다. 앞으로 포유동물이나 인간을 대상으로한 후생유전학적 연구가 더 진행된다면, 단순히 생물학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의료계, 교육계를 비롯한 사회제도 전반에 걸쳐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후생유전이 진화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1, 2 (2023-06-12)

식물 후생유전의 비밀 (2023-05-15)

후생유전학에 관한 오해 (202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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