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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생유전이 진화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2)

앞에 (1)편 글에 이어진 (2)편 글입니다.

어린 시절 TV 에서 본 아주 특이하게 생긴 바닷속 산호들을 보고 신기해 하던 기억이납니다. 그런데 정말 나를 깜짝 놀라게 한건 그 산호들 틈에 숨어사는 해마였어요. 산호의 특이한 색이며 모양을 그대로 닮은 해마가 거기 숨어있던 거죠. 무슨 친척 사이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이상한 모양을 똑 같이 갖고 태어났을까? 정말 신기했습니다. 이후 대학에 들어와 생물학을 공부하면서 모든 것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며, 유전자 변이는 오직 우연한 돌연변이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는 말을 들었죠. 이 말은 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아직도 개인적으로 믿지 못하는 말 중에 하나 입니다.
비전공자에겐 생소할 수도 있는 후생유전학은 사실 그 동안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생물학자들에겐 한줄기 희망같은 느낌이었죠. 왜냐하면 우연히라는건 납득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신이 만들었다는건 더욱 믿기 어려운 얘기였으니까요. 2000년대 초 미국 한 연구소에서 열렸던 후생유전학 초기의 다소 과장되고 부풀려진 내용으로 가득찼던 세미나가 생각납니다. 그 곳에 있던 과학자들은 좀 당황했던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아직 과학의 범주에 들어오지 못한 주제 같았거든요. 이제 어느덧 20여년이 흘러 많은 발견과 해석들이 있었고 과학의 형태를 갖춘것 같습니다. 아직은 헛점이 많은 이론이지만 새로운 학설이 어떻게 커가는지, 어떤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되는지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분야입니다. 생물이 보여주는 수수께끼 같은 삶은 우리에게 아직도 멀었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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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생유전이 유전체에 미치는 영향

후생유전학적 형질의 짧은 유지 기간의 특징을 고려하면 유전체 밖의 것이 진화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DNA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한 방법일 것이다. – 이와 관련된 몇몇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아래쪽 "후생유전이 유전체에 영향을 주는 방법" 참고>  Rechavi의 연구팀은 이런 현상이 동물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선충의 유성생식을 촉진하여 유전적 진화를 촉진한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경우 어린 선충의 DNA에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돌연변이를 만드는 방식은 유전체에 무작위적인 양상으로 일어난다; 그 결과 후생유전학적 유전형질은 유전적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 Rachavi에 따르면 비록 궁극적으로 유전자 진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보기 위한 자손들에 대한 염기서열 검사는 하지 않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또 다른 가설은 후생유전학적 유전 형질은 특정한 유전자들에 영향을 주어 적응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만약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특정 유전자가 오랫동안 침묵하게 된다면 이 유전자에 무작위적인 돌연변이가 축적되어 기능이 바뀌거나 없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이런 후생유전학적 침묵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 유전자는 돌연변이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Ashe의 설명이다.

Ashe는 이 가설은 동물에서 시험된 적이 없다고 했지만, 2019년 Stajic과 동료들의 실험에서 URA3를 침묵시킨 효모에서 어느 정도 증거를 찾아 볼 수 있다. 이 연구자들이 URA3에 의해 독성분이 생성되는 배양액에서 키울 경우 이 유전자의 침묵이 후생유전학적으로 더욱 발현이 억제가 되는데 이때 몇 세대가 지나면 이 유전자에 대한 knockout돌연변이들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즉, Staji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처음엔 간편한 적응이 일어나고 시간이 지나면 견고한 변화로 유전체에 영구적으로 남는 것이다. “이 경우, 후생유전학적 변화는 초기에 군집이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완충작용을 하는 것이고, 결국엔 유익한 돌연변이가 일어나 안착하는 겁니다.”

좀더 직접적인 것을 말하자면 후생유전학적 표식의 일부는 돌연변이를 유발하여 유전체 내에서 돌연변이 양상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틸기의 경우 사이토신을 티민으로 바꾸는 화학반응을 촉발한다. 메틸기는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DNA 조각인 전이 인자를 억제하여 유전체의 안정성에도 영향을 준다. “이런 안정성의 변화는 DNA 염기서열에 직접 영향을 주어 유전적 적응으로 이어질 수 있죠.” Weyrich의 말이다. 최근에 애기장대풀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메틸기와 히스톤 변형 그리고 염색질에의 접근성을 포함한 후생유전학적 표식에 의해 조정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 그런 돌연변이가 생식세포에서 일어나면 다음 세대로 전달될 것이며 종의 진화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Goodisman은 말했다.

이런 방법으로 후생유전학적 유전은 종의 다양화에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텔아비브 대학의 생물철학자인 Eva Jablonka는 말한다. “처음엔 환경에 대해 생리 수준의 적응 현상이 일어나죠.” 그리곤 (이 생물에서) 이를 안정화 시킬 수 있는 무엇이던 선택이 되는 겁니다.” 현재까지는 이 이론에 대해서는 관련 증거 밖에는 없다며 그녀는 darter fish(genus Etheostoma)에 대한 연구를 언급했다. 이 물고기의 격리가 진행된 두 집단을 비교하면 유전적 차이보다는 메틸화 양상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생유전학적 차이가 두 종의 생식적 분리에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비슷한 결과가 spiny mouse(가시쥐) Acomys cahirinus의 집단과 유럽 sea bass(해양 배스) Dicentrarchus labrax에서 발견되었다. 해양 배스의 경우에는 양식이 시작되던 시기의 샘플과 25년간 선택적 생식을 경험한 샘플 간에 사이토신-티민 돌연변이를 비교해보면 후생유전학적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개 종간의 형질 차이는 유전적 차이보다는 커 보인다 - 인간과 침팬지는 불과 몇 %만이 다르다 -는 건 DNA의 역할 외에 다른 요인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Weyrich는 “만약 우리가 이 유용한 기전을 완전히 부정한다면 … 아마도 진화의 다양성을 설명할 중요한 조각을 잃어버리는 겁니다.”라고 조언한다.

종 분화에서 후생유전학의 기능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나는 여기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정말 확실한 증거가 부족합니다.” Charlesworth의 말이다. 증거를 얻기가 아주 어려워서 그럴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확실한 후생유전학적 양상의 변화를 알기는 어려워요 왜냐하면 각 개체는 물론 한 개체라도 생애의 시기에 따라 아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정량이 가능하고 충분한 적확성을 갖는 유전적 돌연변이에 비하면, “메틸화 정도와 같은 것은 막연한 통계치에 불과하죠.”

후생유전학적 유전이 진화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아직 인류가 풀지 못한 생명에 관한 많은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연구의 결과들은 과학계는 물론 인문사회계열이나 종교에서도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증거를 찾는데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Jablonka와 Marion Lamb과 같은 진화학자들은 이미 1980년대에 후생유전학적 유전이 진화를 움직이는 한 축이라는 견해를 2005년 “Evolution in Four Dimension”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한 바 있다. 또한 Extended Evolution Synthesis(EES)라는 개념으로 DNA중심으로 이루어진 현대 과학에 대해 이론적 대안을 제공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Charlesworth와 같은 학자들은 “기존에 이루어진 과학적 업적들이 결코 부실하거나 억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매우 탄탄하다.”는 견해이다. 따라서 왠만한 증거로는 기존의 이론을 뒤엎거나 큰 오류를 발견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우리는 진화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지 못한다.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들만으로 결론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유전자의 염기서열에 무작위적으로 나타나는 돌연변이 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고 그에 대한 뛰어난 연구들이 계속 되고 있다. 선입관을 가지고 논의를 한다면 아직은 이론적인 논쟁만 거듭할 뿐이다. 인류의 위대한 정신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진화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들은 물론 그 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볼 수 있는 혜안과 학설, 그리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기발한 실험들과 그 결과들을 해석할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이글은 아래의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 일부 내용은 첨삭하였습니다.>

Katarina Zimmer, 2022, Do epigenetic changes influence evolution? The Scientist, Nov. 1. 2022.

<후생유전이 유전체에 영향을 주는 방법>

과학자들은 후생유전학적 변형이 유전자의 발현만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체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생식 세포에서도 일어난다면 이 변화는 자연선택이 작동하는 유전적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과정이 어떻게 진화에 영향을 줄지 아직도 탐색하는 중이다.

1. 돌연변이를 조장한다.

과학자들은 이미 수십년전부터 메틸화가 사이토신(cytosine)을 티민(thymine)으로 바꾸는데 관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생식세포형성 중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진화의 주요 원인이 될 것이다. 실제로 사람의 배아의 특정 유전체 부위에 연구한 결과. 사람에게 특이적인 약 20% 정도의 돌연변이가 이 사이토신 메틸화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2. 돌연변이 양상을 결정한다.

암세포의 연구들에서 DNA가 뉴클레오솜 상태로 응축된 구조를 갖으면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돌연변이 발생율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 알려졌다. 뉴클레오솜 구조를 갖을 때 돌연변이가 일어나기 쉬운 단일 가닥으로 존재할 확률이 적어진다.

3. 돌연변이를 줄인다.

후생유전학적 변형은 트랜스포손(전이 인자)을 억제하여 진화 속도를 줄일 수 있다. 이 문제아(?)들의 이웃한 유전자들도 덩달아 침묵할 수 있기에 유전자 발현과 트랜스포손 억제라는 두 가지 필요가 상충하는 경우도 있다. 특정 초파리 계열의 파리에서는 트랜스포손이 잔뜩 들어찬 Y 염색체의 일부를 다른 염색체로 옮겨 중요한 유전자들에 침묵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 경우도 있다.

4. 유전자의 새로운 기능 부여

오래도록 후생유전학적으로 침묵하게된 유전자는 돌연변이가 누적될 수 있고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관련 증거들이 있는데, 중복된 유전자는 후생유전학적으로 침묵하게 된 경우가 많다. 이들은 개체에게 유용한 기능을 갖지 않는한 유전체에서 쉽게 제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 이들에게 누적되는 돌연변이는 새로운 기능을 부여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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