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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포유동물에서 후성유전의 세대간 전달
지난 topic No. 96에서 다루었 듯이 태아시기에 영양부족을 겪은 사람들에게 당뇨병을 비롯한 대사질환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차이는 후성유전학적 변형이 원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죠. 그렇다면 이런 후성유전학적 변형이 사람에서도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래 글에서는 지난 2023년 genes에 발표된 Jana Švorcová의 리뷰논문(Genes 2023, 14, 120. https://doi.org/10.3390/genes14010120)을 요약, 발췌하여 최근에 인간을 비롯한 포유동물에서 후성유전의 세대간 전달(transgenerational epigenetic inheritance, TEI)에 대해 어느정도 연구가 진행되었는지 소개했습니다.
이 글을 읽기 전에 한가지 알아야 할 점은 여기서 얘기하는 TEI는 획득 형질의 유전이라기 보다는 특정 유전자의 발현 양상이 유전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기근이나 홀로코스트와 같은 스트레스 상황, 특정한 냄새에 대한 조건 반응과 같은 경험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죠. 이것은 필요에 의한 특정 형질의 획득과 유전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TEI 를 용불용설로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은 아직 시기 상조입니다. 이 논문의 결론에서도 언급했듯이 TEI 현상이 진화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것은 맞습니다. 다만 TEI 연구가 어떻게 진화와 연관되어 연구될 지는 아직 확실치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CpG의 메틸화 자체가 GC를 AT로 바꾸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변화만으로 후성유전적 변화와 유전자 염기서열의 변화의 관계를 규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발견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가설을 세우기 조차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혹독한 경험과 후성유전학적 전달
1. 스트레스,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 스트레스 호르몬 수용체
스트레스와 관련된 후성유전학적 연구는 아마도 극진한 어미의 보살핌이 코르티솔 수용체(glucocorticoid receptor, GR)의 유전자 조절부위에 후성유전학적 변형을 일으키고, 그 결과 코르티솔(cortisol = glucocorticoid = stress hormone)의 작용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고한 논문일 것이다(1). 어미의 보살핌의 정도가 해마부위(Hippocampus)의 GR 유전자 조절부위의 메틸화를 조절한다. 이 부위의 메틸화는 GR의 발현을 억제하는데 출생시에는 메틸기가 붙어있지 않지만 출생직후부터 메틸화가 일어난다. 어린 시절 충분한 보살핌을 받은 새끼들의 경우 이 메틸기가 점점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즉 어미의 존재와 접촉이 메틸기를 제거한 것이다. 그 결과 GR의 발현이 증가하며, 그 개체는 다른 보살핌을 잘 받지 못한 개체에 비해 스트레스에 잘 견디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쥐에서 볼 수 있는 증세는 사람의 경우에도 외상후 증후군(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에서도 볼 수 있다. 이 특정한 위치의 후성유전학적 변형은 이후 특정한 성장 시기에 재설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GR은 심혈관계 기능, 스트레스 반응 조절, 면역, 신진대사, 생식과 발생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GR의 변화는 코르티솔의 농도 변화와 함께 트라우마나 스트레스에 관한 연구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변수이다. 이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PA) 축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쳐 다른 호르몬에도 영향을 준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된 남녀는 모두 코르티코스테론(사람의 경우 알도스테론 등으로 가는 중간 산물, 생쥐 등 다른 동물에서는 스트레스호르몬으로 작용)의 농도가 낮아지는데, 여성의 경우는 유년기에는 옥시토신은 증가, 성인일때는 프로락틴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2).
GR의 경우 해마부위에서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HPA 축의 높은 활성과 관계가 있으며 사람에서 자살, 조현병, 또는 기분장애와 관련된다. 태아기 스트레스의 영향은 이어진 3대에 걸쳐 모계 쪽으로 민감해진 HPA축, 불안, 회피행동으로 나타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3). 암컷의 뇌에서 전전두엽과 해마부위의 신경밀도가 감소하고 또한 신경가소성, 신경 성숙, 분지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의 발현에 변화가 발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Bohacek 등(4)에 따르면 태아기 트라우마를 겪은 수컷에서는 시냅스 가소성, 신경신호 전달 그리고 장기기억에 손상이 오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자살한 사람들의 사후 부검을 통해 해마부위의 GR 유전자 부위의 과메틸화 그리고 이에 따른 GR의 발현감소가 발견되었고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한 현상이 유지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5). 어린시절 학대 받은 여아는 HPA가 민감해지고 해마부위의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6). 임신 3기에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경험한 엄마들의 탯줄 혈액을 조사해보면 GR 유전자에 과메틸화가 일어난 것을 보여주었고 그 아이는 생후 3달이 지나 조사한 결과 침속에 코르티솔의 농도가 높게 나타났다(7).
생쥐연구에서 RNA분자가 특정 냄새에 대한 두려움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해주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8). 즉, 훈련이 된 수컷 F0세대에서 얻은 RNA분자를 다른 수정란에 주입하면 특정한 냄새에 대해 신경반응과 신경해부학적 증가를 전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9). Gapp 등은(10) 이런 외상 증후가 2 종류의 RNA에 의해 전달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long noncoding RNA(lnRNA)로 이를 수정란에 주입하면 과식, 인슐린 민감성, 성인기 위험요소의 증가가 나타난다. 다른 하는 small RNA로 이는 우울증세와 과체중의 위험을 높인다.
지금까지 설명한 연구들은 사실 세대간 유전을 직접 연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 소개된 내용은 세대간 전달과 깊은 관계가 있는 일반적인 현상들을 다룬 것이다.
2. 전쟁과 기근
인간의 세대간 후성유전학적 전달은 2차 대전 말기인 1944/45년에 있었던 네덜란드에서의 집단기근을 통해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Hunger Winter(배고픈 겨울)라고 부르는 이 시기에 임신 초기 자궁에서 심한 기근에 시달린 태아들은 자라서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알려졌다. 또한 젊은 시절에 혈압도 높았고 조현병 발병률도 높았다. 다만 이것이 정말 다음 세대로 형질이 전달 된 것인지는 불분명했다. 당시 태아였던 아이들이 몸속에는 이미 생식세포들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유전이 된 것인지 아니면 조모의 몸 속에서 세포로 존재하던 증손이 스트레스를 받는 그때 같이 영향을 받았다가 한참 뒤에 나타난 것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근을 경험한 할아버지의 손자는 할머니와 손녀의 경우에 비해 사망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 즉, 정자의 경우는 전달이 되었다는 얘기고 이는 성별 따른 차이를 보여준다. 이와 비슷하게 독일군에 의해 자행된 레닌그라드 포위작전 시기에 태아나 어린 나이에 기근을 겪었던 사람들도 고혈압 확률이 높게 나타나고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진 것이 알려졌다(11).
Lumey의 리뷰논문에 따르면 태아기에 겪은 기근과 다 자란 후 신체의 크기는 당뇨나 조현병과 함께 관계가 있다고 한다. 반면, 조부나 조모가 천천히 자라는 시기(약 9 세)에 영양상태가 나쁜 경우에는 그들의 손주 때에는 도리어 지적 건강 점수가 높게 나타났다(12). 이렇게 트라우마나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가 그 영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Rachel Yehuda와 동료들은 홀로코스트를 경험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트라우마의 영향을 연구했다(13). 그녀의 연구는 주로 세대간 전달에 집중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홀로코스트(the Holocaust) 생존자들의 자손은 PTSD와 다른 정신질환의 발병률이 대조군에 비해 높았다는 사실을 보고하였다. 자손들은 그런 트라우마를 겪은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다른 연구에서도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손주들에서 비슷한 결과를 얻었으며 이런 결과와 연관하여 코르티솔에 관계된 유전자에 과메틸화가 일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14). 또한 모계(부계는 아님) PTSD는 자손의 민감한 코르티솔 반응과 관계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15). Kertes 등(16)은 모계의 만성 스트레스와 전쟁의 트라우마는 자손의 HPA 축을 조절하는 중요 유전자(FKBP5, NR3C1, CRHBP and CRH)의 메틸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였다.
홀로코스트의 경우 이런 영향은 단순히 행동의 전달(이 것도 후성유전학 표식을 남길 수 있다)로 설명할 수 있다. 자연계에서는 사회적인 전달(social transmission)과 후성유전학적 전달이 상호 강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특히 사람에서는 사회적 전달을 배제시키기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손이라면 이들이 직접 그런 경험을 하지는 않았지만 트라우마를 겪고 여기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 같이 산다는 것 만으로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를 겪은 세대가 가진 죄책감이나 지나친 정체성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 외에도 PTSD는 여러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고 이들이나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키워진 사람들은 크고 작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혹독한 시기를 경험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와는 달리 메타분석을 통한 van IJzendoorn 등(17)의 연구에 따르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다음 세대들은 정신적 건강과 관련하여 진단을 받는 부분을 제외하면, 2차 트라우마의 징후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Gapp 등(18)의 생쥐 연구에서는 어미와 분리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주는 경우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은 어미 생쥐로부터 초기에 분리된 수컷 생쥐(암컷은 아님)의 경우 행동의 유연성이나 목표-지향적 행동 점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런 변화는 미네랄로코르티코이드(알도스테론; 사람의 경우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 수용체 유전자 근처의 히스톤의 변형을 수반한다. 저자들의 생각은 초기에 트라우마는 좋고 나쁨을 따지기 어렵고 보다 상황에 따른다고 본다. 이 경우 어미로부터의 분리는 적응 반응을 강화시켜 성체가 되었을 때 어려움에 잘 대처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홀로코스트의 다음 세대들이 더 내성이 커서 정신질환의 발병률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19). 이와 비슷한 양상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손주들에게서도 발견되었다.
3. 후성유전적 변형의 세대간 유전
생쥐를 이용한 냄새실험에서(20) acetophenone의 냄새와 함께 전기 쇼크를 가하면 결국 이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과민반응이 다음 세대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때 이들의 정자를 얻어 메틸화정도를 비교해 봤더니 이 acetophenone의 화학적 수용기인 M71 유전자에 메틸기가 없어진 것을 발견할 수 있고 이는 이 수용체의 발현이 증가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는 acetophenone에 대한 후각 망울(olfactory bulb)과 이에 따른 반응 뇌부위의 확대로 이어졌다. 대조군으로 이 냄새에 노출 되었지만 전기쇼크를 병행하지 않았던 생쥐에서는 이런 현상을 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사회적 전달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교차-양육(트라우마를 겪은 수컷의 자손을 다른 부모에 의해 키워지도록 함)과 인공수정(트라우마 생쥐의 정자로 정상 생쥐 암컷을 수정시킴)을 실시하였다. 이 결과 앞에와 마찬가지로 이 냄새에 과민화된 생쥐의 자손이 이 냄새에 반응하는 부위가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연구자들은 이런 변화가 다시 회복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같은 냄새를 경험 시키면서 나쁜 자극은 주지 않는 실험을 반복하면 후성유전학적 특징들이 없어지고 뇌 부위의 변화도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환경적인 치유에 중점을 두어 운동을 많이 하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면 시냅스의 가소성이나 학습능력, 기억력 등이 향상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21). 이 연구에서 새로운 microRNA의 관련성을 볼 수 있었으나 이는 오직 세대간 전달에 국한된 것이었다.
4. 이별의 충격
어미로 부터의 분리 또는 이별의 충격(트라우마)이 세대간 후성유전학적 전달(TEI)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았다. 반복적으로 불규칙하게 어미로부터 수컷 자식을 떼어 놓으면, 어미는 스트레스를 받고 결과적으로 자식의 존재를 무시하게 된다. 이후 수컷 새끼는 사람의 우울증과 비슷한 행동을 보이며 성체가 되었을 때 강박증세를 보일 확률이 높아진다. Mansuy와 그녀의 연구팀은 이 트라우마를 겪은 수컷 생쥐의 정자로부터 ncRNA를 분리하였고, 이 ncRNA(비암호화 RNA; 단백질 유전자가 아님)를 경험하지 않은 생쥐의 부모로부터 나온 수정란에 주입하면 트라우마를 겪은 생쥐의 자손과 비슷한 행동양상을 보여주었다. 이는 최초로 ncRNA를 주사하여 행동이 유전될 수 있음을 것을 보여준 논문이다. 이는 또한 트라우마를 겪은 수컷 생쥐를 정상 암컷 생쥐와 교미 시킨 뒤 따로 분리하는 방법으로 사회적인 전달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입증하였다.
이 연구에서도 교차실험을 시행하였는데,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결론적으로 트라우마에 의한 형질은 그 후대에도 나타났고, 어떤 경우는 5세대까지 전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사회적인 전달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TEI에 관한 것 만을 다루고자 한다. 이를 연구한 결과 Rodgers 등은(22) 부모세대의 스트레스를 전달하는데 관여하는 microRNA를 9가지 분리할 수 있었고 이들을 수정난에 주사함으로써 특정 스트레스 형질을 전달 할 수 있었다.
Isabelle Mansuy와 그녀의 연구팀은 파키스탄의 고아들을 상대로 연구한 결과, 이들의 혈액에는 특정 miRNA(특히 miR-16과 miR-375)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는 어릴 적에 부모를 잃은 남성(18-25세)의 정자에서도 발견되는 miRNA이다(23).
Van Steenwyk 등은(24) 트라우마를 거친 생쥐의 행동적, 대사적 후성유전적 형질은(우울증 등) 3대까지 전달되며, 혈당조절 장애, 위험-감수 행동은 4세대까지 전달된다는 것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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