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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염색체가 들려주는 진화의 비밀

진화는 어떤 목표가 없이 그때 그때 그 상황에서 유용한 유전자나 형질을 가진 개체가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게 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소개한 이기적인 염색체,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기적인 센트로미어(selfish-centromere)는 암컷 생식세포가 감수분열할 때 특정 염색체가 극체(polar body)가 아니라 난자(egg)로 들어가도록 만들어 진화의 우위에 서게 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정말 진화에 특화된 DNA염기서열이라고 부를 만하죠. 별다른 유용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단지 특정 염색체가 난자에 들어갈 확률을 높인다는 이유로 진화에서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진화의 오랜 역사를 보면 별 희한한 방법으로 세상에 살아남는 경우가 많은데 그 꼼수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생물은 이들이 너무 번창하지 못하게 막는 방법까지 터득하고 있다고 하니 더욱 놀라울 따름입니다. 우리 인간을 비롯한 생물들이 얼마나 빡빡하게 살아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하자면 이 연구도 주로 식물에서 이루어 졌는데 생물학을 다양한 방면에서 연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 알려주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어려운 부분들은 과감히 축약하였고 혹시 너무 축약하다보니 도리어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을 주시거나 원논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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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센트로미어(selfish-Centromere)
* 센트로미어(selfish centromere)는 염색체 부위로 방추사와 동원체가 결합되는 부위를 말한다. 원래는 중심체라고 번역했는데 이후 centrosome도 중심체라고 번역이 되면서 혼란스럽게 되어 방추체 등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그냥 센트로미어라고 쓰기로 한다.

​포르투갈 령 마데이라섬(Islands of madeira)에는 다른 염색체 수를 가진 6 종의 생쥐들이 살고 있다. 생쥐의 염색체 수는 n=20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지역에 사는 생쥐들의 염색체수는 이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염색체 수의 감소는 아마도 이 섬에 생쥐가 들어온 1,000년 전부터 일어난 사건이라고 짐작된다. 이런 갑작스러운 염색체 수의 감소는 소위 Robertsonian(Rb) fusion(로보트손 융합)이라는 염색체 융합 현상때문에 발생한다. 이는 서로 다른 염색체들이 융합되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으로 주로 acrocentric chromosome(첨단부동원체형 염색체, 방추체가 결합하는 센트로미어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긴 팔과 짧은 팔의 비율이 크게 다른 염색체)에서 일어난다. 염색체 수가 다르다는 것은 생식적으로 격리된다는 얘기고 따라서 종분화의 중요한 단계가 된다. 그런데 마데이라제도의 생쥐집단에 이렇게 많은 종분화가 발생한 이유는 Rb fusion이외에 또 다른 요인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Rb fusion을 거친 염색체가 암컷의 감수분열시 극체가 아니라 난자로 더 잘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감수분열시 상동염색체는 똑 같은 비율로 4개의 딸세포로 나뉘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멘델의 "분리의 법칙"으로 F2세대에서 우성과 열성이 3:1의 비율로 나타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미 수십년전부터 이기적 유전자가 이 메델의 법칙을 어기고 다음 세대로 넘어갈 확률을 높이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표 참고). 즉, 난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나머지 3개의 딸세포는 극체가 되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건 난자로 들어갈 확률이 높은 염색체는 다음 세대로 이어져갈 확률이 높은 것이다.

표: Rb fusion에 의해 난자로 해당 돌연변이 염색체가 난자로 이동할 확률이 80%로 높아지면 자손의 핵형에 따른 비율이 아래와 같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퍼넷스퀘어 그림.
​W/W : W/Rb : Rb/Rb = 1: 5 : 4

Rb fusion은 현미경으로 관찰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교적 연구하기가 용이하다. 센트로미어의 크기에 따라 분리의 법칙에 어긋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즉, 센트로미어가 클수록 난자로 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세트로미어의 DNA서열은 심한 반복서열이다. 따라서 크기가 큰 센트로미어는 반복서열 satellite DNA가 많고 센트로미어에 결합하는 단백질도 많아진다. 따라서 새로 형성된 Rb fusion 염색체는 센트로미어의 크기가 크고 본래의 위치에 움직이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약 50여년전 Michael J.D. White가 논문에 밝혔듯이 “염색체 재조합 중에 강력한 분리기능으로 종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주 드문 경우가 바로 암컷 감수분열의 분리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갖게 하는 것이다.” 라고 추측했다. Rb fusion이 바로 그런 재조합으로 센트로미어 확장을 통해 분리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 마데이라섬과 다른 지역에서의 염색체 경쟁이 어떻게 빠른 핵형 변화와 (서로 다른 fusion set의 융합이 누적된) 두 집단에서 생식적 격리가 일어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불평등 분리에 관한 초기 힌트들
유전학자인 Marcus Rhoades는 옥수수의 비정상 염색체 10 (Ab10)의 관찰을 근거로 감수분열 조정(meiotic drive)이라는 개념을 1942년에 처음 제시하였다. Ab10은 “knob”이라고 부르는 잉여의 DNA조각을 포함하고 있다. Rhoades는 Ab10이 암컷 감수분열에서 알에 들어가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Ab10 염색체는 1차 감수분열 후기에 더 극(polar side)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여주는데, 암컷에서 감수분열이 일어날 때 가장 밑에 있는 세포가 난자(egg)를 형성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Dawe et al., 2018). Rb fusion의 경우가 Ab10의 경우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센트로미어의 확대에 의해 염색체의 위치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예이다.

센트로미어는 사실 유전자로서의 기능은 별로 없지만 그에 딸린 염색체의 생존에는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센트로미어가 있어야 딸세포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요한 유전자도 센트로미어와 연결되지 못했다면 없어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센트로미어는 매우 중요하고 모든 생물에서 보존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반대다. 많은 방추체 단백질들이 진핵생물의 진화과정에서 많이 변했고 이때 나타나는 아미노산 서열의 변화는 positive evolution(형질이 더 적합한 것이면 더 잘 살아남는 진화)의 양상을 보여준다. 센트로미어 자체의 염기서열도 가까운 종간에도 변이가 아주 심하다. 잘 보존된 기능을 공유하지만 이렇게 변이가 심하다는 건 수수께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학자들은 센트로미어 자체가 감수분열 조정에 역할을 담당한다고 가정하였다. 센트로미어어 조정 가설(centromere drive hypothesis)에 따르면 센트로미어 DNA 염기서열이 (마치 옥수수의 knob과 같이) 이기적 유전인자로 작용하여 염색체분리 자체를 조정하여 다음 세대로의 전달을 도와준 결과라는 것이다. 센트로미어 조정이 사실이라면 적응력에 손해를 미칠 수 있다. 예를 들면 분리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 배우체의 염색체 이상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런 대가는 적응력의 손실을 만회하고자 센트로미어 단백질의 진화에 영향을 압력을 주게 된다.
그러나 반복서열의 비암호화 DNA인 센트로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여 센트로미어에 결합하는 단백질들을 암호화하고 있는 유전체에 지속적으로 적응 진화하게 압력을 준다. 이런 지속적인 유전자의 문제는 면역관련 유전자들이 끊임없이 변하는 병원균으로부터 오는 압박에 적응 진화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결과로 가까운 유연종 사이에도 센트로미어나 이에 결합하는 단백질들이 아주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런 이유로 조정 가설(derive hypothesis)에 따르면 어떤 집단에서 특정 센트로미어에 적응한 단백질들은 다른 집단의 센트로미어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결국 잡종이 생식적 격리와 종분화로 이어지지 못하게 된다. 이는 핵형의 차이가 만들어낸 격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센트로미어 조정 가설이 처음 제시된 것은 monkeyflower(Mimulus spp. 파리풀과)에서 발견되어2008년 발표된 논문이다. 이 식물에서 센트로미어의 확대 현상을 볼 수 있었고 이 경우 다음 세대에 분리 현상이 심하게는 98%까지 왜곡되어 일어난 것이다. 이 식물의 확대된 센트로미어 염색체가 동형집합일 경우 씨와 화분의 생산이 줄어드는 대가를 치룬다. 이어진 연구에서 다음 세대로의 전달율은 유전적 배경에 따라 많이 다르게 나타나며, 특히 H3 히스톤의 변이가 이 조정의 억제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변이(CENP-A 또는 CenH3)는 센트로미어 DNA의 응축에 관여하고 동원체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관찰은 센트로미어 조정 가설과 잘 일치하는 것으로 생물학자들에겐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환기 시킨다. 어떻게 이기적 센트로미어가 분리현상을 왜곡시키는가? 어떻게 센트로미어 단백질들이 유전자 분리가 불균형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상하는가? 그리고 이런 현상들이 집단이나 종의 진화에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등이다.

불균등 분리가 일어나는 이유
센트로미어 조정 가설에서는 암컷 감수분열의 비대칭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수분열을 거쳐 3개의 극체(polar body)와 하나의 난자를 만들어 내며, 극체는 사라지지만 난자로 들어간 염색체는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센트로미어가 난자로 갈지 극체로 갈지에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은 것 같다. 세포막 근처에서 일어나는 신호전달과 튜불린 변형 효소들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다. 즉 방추사의 형성속도와 튜불린 변형형태도 세포막 근처와 세포 안쪽의 방추사 간에 차이가 있다. 세포분열시 처음에는 염색분체가 모두 같은 극의 방추사에 연결될 수도 있다. 그 후 방추사가 무너졌다 생기기를 반복하면서 각 염색분체가 반대편의 방추사로 연결되고 결국 서로 반대 방향으로 끌려가는 것이 세포분열과정이다. 그런데 이기적 센트로미어는 이런 과정에서 방추사가 잘 무너지도록 만드는 경향을 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세포막과는 반대 방향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Akera et al., 2019). 그 결과로 난자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불균등 분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센트로미어 조정에 대항하기
센트로미어 조정에 따른 다양성 감소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염색체 분리과정에 영향을 주어 자손에게 잘전달되도록 만들어진 돌연변이가 있다면 현재보다 더 많이 퍼져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 종에서 이런 이기적 센트로미어의 빈도가 높지 않은 것을 보면, 자연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유용한 유전자도 아닌 것이 염색체의 분리과정에 영향을 주어 진화의 우위에 서도록 남겨두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기작은 자연선택일 수도 있고 히스톤단백질의 변형에 의한 능동적인 제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연구과정을 통해 자연이 얼마나 많은 사건과 이에 대처하는 능력이 잠재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래의 글을 번역하였고 필요한 부분은 관련 논문들을 참고하여 가필 하였습니다>
The Scientist, Probing “selfish” centromere unreveils an evolutionary arms race. Michael Lampson Ph.D. Apr 3, 2023.
Akera et al., 2019, Cell 178, 1132–1144: https://doi.org/10.1016/j.cell.2019.07.001
Dawe et al., 2018, Cell 173, 839–850: https://doi.org/10.1016/j.cell.2018.0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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