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
박쥐의 면역계: 독특한 항바이러스 시스템
박쥐는 이솝우화 때문인지 지조 없고 비겁한 동물로 평가 절하되고 있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박쥐만큼 진화의 첨단에 서 있는 생물을 보기 힘듭니다. 포유류가 자그마치 새들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잘 날아다니고, 초음파탐지를 이용해 밤에도 움직이는 곤충을 정확히 포획할 수 있습니다. 박쥐가 잡아먹는 곤충의 양이 어마어마해서 매년 수 십억 달러의 경제 효과가 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박쥐가 옮겨주는 화분으로 수분되는 식물들도 많습니다. 박쥐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질병에 잘 걸리지도 않아 늙어 죽을 때까지 얼마나 늙었는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평균 수명도 같은 몸 크기의 동물들에 비해 월등히 깁니다. 어떤 종은 40년 이상 산다고 하는데 이는 비슷한 무게의 다른 포유류에 비해 10배정도나 되는 거죠.
그런데 요즘 박쥐가 주목을 받는 결정적 이유는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의 관계 때문이죠. 즉, 박쥐는 인간이나 다른 포유류에겐 치명적인 바이러스들을 건강한 상태로 보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수병이나 에볼라와 같이 인간에겐 치명적인 바이러스들이 포함되는데요 박쥐는 어떻게 이 바이러스 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이 비밀을 풀기위해 박쥐의 유전체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고, 2016년 Bat1K project가 시작되었습니다. 1,400여 종이나 되는 모든 박쥐들의 유전체를 분석해 보자는 거죠. 그 결과 가장 특징적인 변화는 면역 유전자들의 독특한 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지나친 염증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면서도 효과적인 항바이러스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사람에게도 이런 면역 시스템의 적용이 가능할까요?
박쥐의 면역계: 원조 항바이러스 프로그램
박쥐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이제 과학자들은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박쥐의 서로 다른 종에서 일관되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적응 형질을 갖는데 이중 바이러스 감염에 아주 잘 견디는 성질이 있다. 박쥐는 다양한 이질적인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적인 종이 약 5천만년전에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진화적인 스트레스가 종-특이적인 적응에 중요한 형질을 수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예로 박쥐는 포유동물 중에는 유일하게 자신의 동력만으로 날을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그만큼 활발한 신진대사가 일어나며 그 결과 과다한 활성산소가 생산될 것이다. 이런 활성산소는 DNA의 손상을 유발하고 이는 세포의 죽음으로 이어지며 만성 염증을 유발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염증반응을 제어하는 특별한 기전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이 과도한 면역반응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을 방지하고 여러 바이러스가 박쥐의 몸 속에서 질병을 일으키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래에 이와 관련된 가설과 증거들을 정리해 보았다.
A) DNA 감지기의 상실
박쥐의 일부 종들은 PYHIN 유전자 집단 전체를 상실했다. Pyrin and hematopoietic interferon-inducible nuclear domain(PYHIN) 단백질은 외래성 또는 자기자신의 DNA를 감지하고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이 유전자군 전체가 없다는 것은 유해한 DNA 바이러스에 의한 염증을 제한하는 박쥐의 능력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어떤 다른 면역반응을 통해 DNA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B) 바이러스의 길항작용에서 탈출하다
일부 항원 감지 장치가 결손된 경우도 있고 중복 다양화된 경우도 있다. Protein Kinase R (PKR)은 double-stranded RNA(RNA 바이러스의 형태)에 의해 활성화되어 바이러스의 침입을 알리고, 항바이러스 반응을 일으킨다. Poxvirus(천연두 바이러스), herpesevirus(허피스바이러스), influenza virus(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 많은 바이러스들이 PKR의 기능을 방해하도록 진화했다. 이는 PKR을 억제하는 것이 바이러스의 감염에 중요한 전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이 효소의 다양화가 이런 바이러스들의 방해를 피해가도록 해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즉, 이들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C) 인터페론
인터페론(interferon)은 항바이러스의 핵심 역할을 한다. 박쥐의 종에 따라 다른 양상의 인터페론 유전자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일부 종은 인타페론-알파(interferon-α)의 유전자 수가 적지만, 일부 종에서는 언제나 바이러스가 없을 때에도 지속적으로 이 유전자를 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부는 잘 연구되지 않은 인터페론-오메가(interferon-ω) 유전자가 20개 이상 확장된 모습을 보여준다. 참고로 인간의 경우는 이 유전자가 단 하나 뿐이다.
D) 인플라마솜(inflammasome)
박쥐의 ASC2(apoptosis-associated speck-like protein containing a CARD2)는 인플라마솜(inflammasome)의 활성화를 막는다. 이 유전자는 원래 영장류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었는데 조사된 13종류의 박쥐의 유전체 모두에서 발견 됬다. 인플라마솜의 활성은 항바이러스 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인플라마솜의 과도한 활성은 인플루엔자를 비롯한 일부 바이러스에 의한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연구자들에 따르면 박쥐의 ASC2 유전자를 발현시킨 생쥐는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었을 때 정상 생쥐에 비해 생존률이 높다고 한다.
E) 자가-백신의 가능성(possible self-vaccination)
최근의 박쥐의 유도 만능줄기 세포의 유전체를 연구한 결과, 비정상적으로 많은 수의 내재성 바이러스유래 서열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 바이러스 유래 유전자들이 실제로 전사되고 번역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람 세포에서도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에 해당 연구자들은 이들 내재성 바이러스유래 서열이 “바이러스와 미생물들에 대항하기 위한 것인지 또한 자가-백신의 역할을 하는 바이러스 단백질을 만드는지”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F) 발견되지 않은 메커니즘
박쥐는 1,400 여종으로 다양하다. Bat1K 유전자 분석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그 동안 전체 유전체를 알아낸 종은 몇 개에 불과하다. 따라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항바이러스 또는 항염증 메커니즘이 많을 것으로 추즉된다.
<이글은 아래 기사를 편역한 것입니다>
Hannah Thomasy, 2024, Turning on the Bat signal. The Scientis, Mar 15, 2024
<원 기사의 주요 인용 논문>
Ahn M et al. Unique Loss of the PYHIN Gene Family in Bats Amongst Mammals: Implications for Inflammasome Sensing.
Sci Rep. 2016;6:21722.Xie J et al. Dampened STING-Dependent Interferon Activation in Bats.Cell Host Microbe. 2018;23(3):297-301.e4.
Ahn M et al. Bat ASC2 suppresses inflammasomes and ameliorates inflammatory diseases.Cell. 2023;186(10):2144-2159.e22.
Pavlovich SS et al. The Egyptian Rousette Genome Reveals Unexpected Features of Bat Antiviral Immunity.Cell. 2018;173(5):1098-1110.e18.